"당신을 위해 내 집이나 통장을 갖지 않을겁니다." 이재철 목사의 서원기도

"당신을 위해 내 집이나 통장을 갖지 않을겁니다."

이재철 목사

-외국계 항공사에서 근무 4년 차에 독립 및 '홍성사'란 이름으로 창업. 중동특수로 대박을 터뜨려 70년대인 20대 후반에 벤츠 자가용, 최고가 아파트, 세계 유람, 고급 업소에서 유흥 등 준재벌 생활.
-1949년생. 6남매의 막내 독자(누님만 다섯)
-양친 모두 부유했고 극장 운영 등 사업가였던 부친이 중학 때 임종했지만 물질적 어려움 없이 성장.
-어머님이 독실한 신앙인이었기에 본인도 모태신앙이었고, 꾸준히 새벽기도 나가고 교회 직분도 맡았지만 진실한 신앙은 없었음.
-중학까지 부산에서 성장하고 고교 때 서울로 올라와 외국어대 진학.
-출판사업으로 확장하여 1980년 전후 '홍성사'의 사세는 한국 서점에서 독보적.
-80년대 언저리에 석유파동과 국내 정치상황 등으로 항공사업이 부도가 나, 출판부를 제외한 제 사업부 매각.
-창업 초기 '사업을 예수님을 위해서 하겠다'란 약속을 깨닫고 출판사업에서도 신앙서적 '믿음의 글들' 시리즈 만 남기고 비신앙 시리즈 모두 폐간커나 매각. 본인은 장신대에 진학하여 목회자로 전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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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님 앞에 다섯 가지 서원기도를 드렸다.

첫째, 지난 만 35년 동안 황금같이 귀한 시간을 헛된 욕망을 위해 허송해 왔음을 속죄하기 위하여 신학을 하기로 서원하였다. ..(중략)..
내게 신학을 할 실력과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신학을 하기에는 너무도 더러운 과거를 소유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단지 내가 신학을 결심했다는 것은 나의 삶을 이제부터는 온전히 주님께 드리겠다는 결단의 의미였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믿음의 글들'이란 나비가 아름답게 잉태된 이상 '고치'에 더이상 미련을 갖지 않고 정리해 나갈 것을 서원하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출판 이외의 모든 출판은 정리하기로 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기존 시리즈를 정리한다는 것은 필자들과 전국의 서점들과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전국의 서점에 깔려 있는 재고만도 10만 권이 넘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추판계의 과출판계의 관례처럼 2~3년이 걸릴 수도 있었다. 그 기간이 얼마나 소요되든간에 더 이상 새로운 계약을 하지 않고 일반 출판을 단계적으로 정리해 나가기로 했다.
셋째, 일평생토록 내 이름으로 된 예금통장을 갖지 않을 것을 서원하였다. 돌이켜 보면 내가 타락하게 된 까닭이 돈 때문이었은즉 돈의 바른 청지기가 되기 위함이었다. 내 개인의 목적을 위하여 돈을 모으지 않는 한, 또다시 돈으로 인해 하나님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란 믿음이었다.
넷째, 일평생토록 내 이름으로 등기되는 집을 사지 않기로 서원하였다. 하나님께서 부도란 ‘매’로 나를 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사업의 목적이 하나님에서 벗어나 있는 까닭은 ‘옛 영화의 회복’을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었고, 그것은 예전보다 더 큰 집을 사서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이사 가는 것으로 압축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앞으로는 그 어떤 경우에도 나 자신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을 것을 서원하였다. 이제껏 지나온 세얼 속에 내가 계획한 대로 되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삶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끊임없이 떨어져가는 나를 포기치 않고 끌어당기시는 하나님의 손길뿐이었다. 그러므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이 내 삶 속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는 더이상 나 자신에게 집착하지 말아야만 했다. 그래서 하루하루 되어져가는 일 속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정말 새 아침이었다. 통장을 갖지 않고 집을 사지 않기로 한 서원에 대해, 날이 밝았다고 해서 후회함이나 불안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 또렷하게 내 심령 속에 새겨지고 있었다. 한잠도 자지 모했음에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상한 힘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토록 좋아하던 술과 담배의 냄새조차 역겨워진 것이 바로 그 날부터였고, 트럼프나 화투짝이 보기도 싫어진 것 역시 그 날부터였고, 주위의 친지나 동료 그리고 가족들이 나더러 ‘사람이 변했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날부터였다.
1984년 8월 2일 ㅡ 그 날이야말로 늘 내 곁에 계시던 주님에 대하여 비로소 눈을 뜬 날이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 이전에 주님을 위해 사는 삶 자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날이었다. 그 날은, 말하자면 나의 새로운 생일날이었다.
('믿음의 글들, 나의 고백' 159p ~ 161p)